나의 육아일기

입덧을 시작하면서 - 잔인한 운명의 여신이여

맛있는돌김 2010. 2. 13. 08:41

입덧이 시작되면서 임신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나는 이미 대학생이 다 된 딸을 가진 착각과 환상 속에서 잠시 행복했지만 그러나 그러한 아이를 가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오래지 않아서 바로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의 즐거운 상상력 뒤에 운명의 여신은 코웃음을 치면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입덧의 고역

아내가 곧 본격적으로 입덧을 하는데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들어갔다 하면 곧바로 나왔다. 음식은 고사하고 식탁에서 마신 물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오는 판국이었던 것이다.

정말 들이마신 숨이 어떻게 폐까지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몸에 들어가는 것은 에누리 없이 되돌아 나왔다. 하긴 들이마신 숨도 다시 나오기는 하지. 하여간 하루종일 화장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역이었다. 차라리 내가 입덧을 하는 게 낫지 아내가 하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하느님은 여자가 아이를 낳도록 만드신 것을... 정말 입덧 하는 것만 보고도 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뉘우쳤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소용없는 짓,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입덧을 하느니 차라리 군대를 가지...

하여간 나는 입덧을 보고서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개인적 사회적으로 온갖 특혜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철저히 굳히게 되었다. 입덧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저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군대를 한 번 더 갔다 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음식은 고사하고 물만 마셔도 다시 나오니 아내에 대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건 약도 없고 무슨 뾰족한 수도 없고 음식을 못 먹으니 굶어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나 역시 하루종일 안절 부절이었다.

그래서 비록 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위장이지만 행여나 받아주는 것이 있을까 해서 뉴욕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을 다 사다가 바쳐보았다. 반시간을 차를 몰아 가서는 주문해서 기다렸다가 다시 반시간을 돌아와서 아내 앞에 갖다 대면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는 게 대다수이고 어쩌다 혀에라도 댈라치면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정말로 난감했다.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변기를 붙들고 몸부림을 치는 아내의 등을 두들겨주면서 내가 명색이 기독교인인데 기도하면 아내의 입덧이 멈추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으니 그 때의 답답하고 다급했던 심정이 오죽했을까!

사실 나는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지만 특정 목사나 소위 능력 받았다는 기도원 원장의 병 고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하느님이 병을 고쳐주신다면 개인의 기도에 직접 응답하지 어떤 특정한 목사나 기도원 원장의 청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앙이고 신념이다.

그 분들의 능력이 그렇게 탁월하다면 아마도 절대다수의 의사들이 실업자가 되었을 것이고 대다수의 병원과 의과대학은 기도원이나 신학교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내의 입덧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 생각까지 다 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탔었겠는가!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