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일기

당신 딸 낳을래? 아들 낳을래?

맛있는돌김 2008. 8. 31. 23:11
우리 힘내서 딸 낳자구!

아이를 가지기 전에 우리가 한 가지 결정할 문제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뜻을 정해야 기도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말을 꺼내자 말자 딸로 결정을 보았다.

아들을 낳아 봤자 어디에 쓰겠는가! 나 자신을 보더라도 아들이란 참 별 볼일 없는 존재다. 그 나이가 되도록 부모님 여행도 한 번 못 시켜드린 내가 아닌가! 딸이라면 곁에서 아양도 떨고 약간의 아부도 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도 하겠지만 아들이란 제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면 오로지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인지라 이역만리 미국까지의 유학도 마다 않고 집을 떠나는 존재다. 그렇다고 내가 딸을 낳을 경우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할 참이다.

요점은 참 재미없는 게 아들이란 말이다. 키울 때에도 아들이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특히 이 세상에서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은 거의가 아들로 태어난 남자들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범죄의 주역도 남자, 잘못된 정치로 나라를 망치는 것도 남자, 전쟁으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도 남자, 여자를 억압해서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 것도 남자, 고부간의 갈등을 유발해서 며느리들을 죽도록 고생하게 만드는 원흉도 따지고 보면 다 아들들이 그 원인을 제공하므로 남자이고 하다 못해 교통사고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많이 일으킨다고 통계가 나와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 딸들을 보라!

그런데 딸들은 보라! 이 세상의 삭막함을 그래도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이 딸들이고 여성들이다. 비록 왜곡된 문화로 인한 현상이지만 하여간 현재까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 온 주역도 여성들이지 않은가! 사실 이 글을 쓰기로 작정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좀 막아보자는 의도라는 것만 보아도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딸이 태어나 그 딸이 씩씩하게 자라서 이 가부장 사회를 조금이라도 인간이 살만한 사회로 바꾸어 나가는 데 일조를 하는 걸 보면서 살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리고 이담에 “엄마 아빠 제주도 여행가세요” 하면서 비행기 표라도 끊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한 순간에 결정을 보았다. “딸을 낳자!” 나는 아내에게 협박했다. “딸을 낳지 않으면 난 무를 거야.”

사실 딸이냐 아들이냐는 여자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남자의 책임인 것을... 왜냐고? 아마도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아들은 y 염색체를 가진 정자에 의해 수정이 된 경우고 딸은 x 염색체를 가진 정자에 의해 수정이 된 경우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정자는 남자가 제공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세상은 신기하게도 여자가 딸을 낳으면 여자를 죄인 취급한다. 전적으로 책임은 남자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딸을 낳을 것이냐!

그런데 딸을 낳기로 결정하고 나니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생물 선생님이 성교육을 두어 시간에 걸쳐서 해 주셨는데 그 때의 그 말씀이 생각이 났다. 생물 선생님의 말씀이 x 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산성에, y 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알카리성에 강한데 성관계 중에 여성이 많이 흥분하면 질 내가 알카리성으로 바뀌어서 아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건 언젠가 신문에서 전혀 근거 없는 학설이라고 읽은 기억도 났지만 그러나 밑져야 본전이라 그 학설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운명의 날 우리는 정말 생물학적 행위만 했다. 아내는 맹숭맹숭한 채로 행위를 치러내야만 했다. 우리의 결정이 실현되기 위해서... 만약의 가능성을 위해서... 그리고 그 결과는...? 안 가르쳐준다. 지금 뽀롱 내면 나중에 재미없다.


우연이 제발 우리 편이기를...


 

여성학이라는 것이 사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체계적이고 엄청난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협력해서 이루어내는 종합학문이지만 여성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서 조그만 실천들이 모여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실천 이면에는 그런 실천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상적이고 심리적인 근거와 뒷받침이 필요하고, 그런 뒷받침이 있음으로 인해서 실천이 가능하게 되지만 어쨌거나 그런 건 여성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는 한 가지 한 가지 차근차근 실천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딸을 원했다. 무엇보다도 아들 타령하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축복 받으면서 태어나는 딸이 가끔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과, 여성주의를 앞장서서 실천하는 한 여성을 키워내려면 딸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를 둘 키운다면 아들과 딸 각각 하나씩 키워서 이상적인 딸과 아들을 두고 싶었겠지만 둘을 키울 계획은 없었기에 하나만 키운다면 딸을 낳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의해서 결정될 사항이었지만 우리의 바람은 그 우연이 우리의 편이기를 바랬다. 그런 심정으로 우린 서로의 몸을 섞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