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도올이 기독교와의 토론에 자신만만한 이유(07/2/17)

맛있는돌김 2010. 2. 12. 22:46

도올과 한국 기독교회 사이의 싸움을 보면 가히 점입가경이다.

도올은 도올대로 그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고 한국 기독교회의 무식함은 그 나름대로 그 깊은 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기 때문이다.


먼저 도올의 입장이나 태도를 보자.

나는 그가 영어로 요한복음을 강의하건 기독교 조직신학을 강의하건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생각을 말로 표현할 자유는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올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의 태도이다.

사실, 요한복음은 기독교 신학에서, 특히 성서학에서(굳이 말하자면 성서학은 기독교 신학이 아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연구는 하지만 성서학은 성서를 연구하는 학문이지 기독교 신학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성서신학이라고 하지 않고 Biblical Study, 즉 성서학 이라고 부른다.) 매우 어려운 책에 속한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가 십자가 형을 당한 이후 한참 지난 후에 쓰여진 책이다. 적어도 60년은 지난 후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초대교회가 형성되고 난 후에 쓰여진 책이며 사도바울이 죽은 이후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복음서라기보다는 당시 초대교회의 전반적인 신학을 반영하고 또 당시의 기독교회에서 보기에 위험스런 사상들에 대한 대응을 일정부분 담보한 책이기 때문에 그 해석과 연구에 있어서 여간 어려운 책이 아니다.

Q자료가 가장 많은 부분을 점하고 있는 공관복음들은 예수의 역사적 행적이나 사실들이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고 그래서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를 해 나갈 수 있지만 요한복음은 성서학적 관점에다가 조직신학적 관점까지 복합적으로 적용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제대로 해석하거나 연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 가지 예로 요한복은 서두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라는 명제부터 시작해서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으니 이가 그리스도 예수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기독교 계통의 한 분파로서 왕성한 활동상을 보이고 있던 영지주의에 대한 대응의 결과로 들어간 내용이라고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영지주의가 구약의 하느님을 악한 하느님으로 규정짓고 신약의 예수를(물론 이때까지 신약 구약이라고 하는 정경화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선한 신으로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것이 아니라 구약의 하느님과 예수는 참 신과 그 신으로부터 나온 로고스라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에는 이미 로고스 기독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고스는 희랍철학의 한 용어로서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법칙이고 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간단한 이해가 되겠는데 이 희랍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기독교가 빌려와서 기독론을 형성해 간 것이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예수의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당시 원시 기독교의 신학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보면 되는데 따라서 요한복음은 쉽게 이런 책이다 저런 내용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안 된다 라고 단정을 내리기 어려운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서학자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성서학자들은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게 되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서 연구한 것도 이것이 어떤 절대성을 가진다라는 태도는 절대 금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올은 그런 연구결과를 발표한 책 몇 권을 읽고서는 자신이 요한복음을 다 이해하고 있고 어떤 학자도 자기보다 더 나은 견해나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교만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그의 강의에서 내가 공부한 범위 내에서 보면 요한복음에 대해서 이런 학설도 있고 저런 학설도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이런 견해가 마음에 들고 논리적으로 옳은 것 같다 하는 정도로 말을 한다면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강의에 대해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넘어서서 한국 교회와 공개토론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단한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성서학이 그렇게 책 몇 권 읽었다고 다 이해하고 누구든 상대로 공개토론을 하겠다고 자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면 지금까지 성서학을 평생의 과제로 여기고 살아왔던 수 백 년 역사 속의 성서학자들은 모두가 멍텅구리 아니면 사기꾼들이 되겠다. 안 그런가?

도올이 이 마당에 가져야할 태도는 나는 이 방면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과 함께 이 요한복음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위해서 이 강의를 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강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그런 분들의 견해를 겸허하게 경청하고 고려해보겠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 것이다.

평생을 한 구절의 연구에 매달려도 계속 새로운 주장들과 논리들이 개발되고 등장해서 자신있게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서 한국 교회와 공개토론을 하겠다니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인가!

평신도의 자격으로 평신도들과 함께 고민하고 다른 평신도들과는 좀 다르게 학문적 훈련을 나름대로 받은 사람이니 자신의 그런 훈련을 바탕으로 자신이 깨닫고 이해한 것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 강의를 한다고 했다면 나는 오히려 도올을 존경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넓게는 전 세계의 성서학자들과(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성서학자들은 전세계 성서학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좁게는 한국의 성서학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큰소리 치고 있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기에 참으로 가소롭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다른 한 편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도 한 마디로 뭘 떨고 있다고 본다. 이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는 건전한 신학적 발전이나 토론은 무시무시한 교권이라는 폭력으로 다 막아놓고서는, 그래서 물리적으로 요한복음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성서학적 성과나 신학적 연구결과, 그리고 연구 자체를 막아놓고서 자신들 목소리 밖에 교회 내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없자 마치 자기네들이 절대적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인양 큰소리 치면서 도올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다.

도올이 하룻강아지라면 한국의 보수 기독교회는 시력을 잃은 코끼리라고나 할까, 거대한 몸집에 넘쳐나는 힘은 있지만 제대로 볼 수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으면서 자신의 몸집만 믿고 생쥐에게 달려드는 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 보수기독교회는 도올과 공개토론을 하면 비록 옅은 지식이지만 말빨이 쎈 도올에게 일회전에서 KO패 밖에 당할 게 없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세상에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학문적인 한국 보수기독교회의 신학이(그것도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어찌 세계 첨단의 학문적 성과를 다룬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도올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지적으로는 세살짜리만도 못한 25세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저능아가 13살짜리 중학생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너랑 공개토론하면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 치면서 물은 수소 원자 두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루어진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중학생에게 너 그런 무식한 소리 말라고, 물 속에 어디 수소와 산소가 보이냐고, 그럼 사람이 물에 빠져도 그 속에 있는 산소로 숨을 쉴 수도 있겠다고 큰소리 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공개토론하면 어찌 25세 저능아가 13살짜리 중학생을 이길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한국 보수기독교회는 도올에게 참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신학적 수준으로 볼 때 한국 기독교회는 3살짜리 아이보다도 지능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올은 중학교 1학년 생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서학을 연구해서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을 연구해서 아주 탁월한 성과를 낸 학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다. 그리고 세계적 단위로 넘어가면 엄청난 대가들이 많이 있다. 그런 대가들에 비하면 도올은 여전히 중학생 수준이란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다. 세계적 수준의 학자는 한국의 신학자이건 외국의 신학자이건 도올의 공개토론 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신학자가 무엇 때문에 한국의 동양철학 전공에 한의사에 어느 신문자 객원기자에 다양한 잡설로 무장한, 그러나 정작 신학에는 거의 문외한에 다름아닌 사람과 토론을 하겠는가?

한국의 신학자라면 한국교회와의 문제가 걸린 일이니까 토론에 응할 명분과 필요성은 느끼겠지만 도올과의 토론장에 나타나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소상하게 밝히면 그날로 한국 교회로부터 이단 삼단이란 온갖 심한 소리를 들으면서 급기야는 교권에 의해서 학자로서의 지위조차 박탈당할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도올의 도전에 응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즉, 도올은 이미 알고 있다. 자기가 아무리 큰소리치면서 공개토론을 제의해도 자신의 공개토론에 응할 상대는 세살짜리 지능밖에 가지지 못한 저능아 수준인 한국의 보수교회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큰소리 친다. 공개토론하자. 그 자리에 보수교회가 내세우는 신학자나 목사가 나타나면 다시 한 번 자신의 잡학과 몇 권 읽은 성서학적 상식을 가지고 이 저능아를 사정없이 깔아뭉개면 되고 만약 아무도 안 나서면 그건 그것대로 자신이 판정승을 거두는 것이니 손해볼 것이 없는 제안인 것이다.

나 개인적 바램은 그렇다.

누군가 한국 보수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요한복음 전공 성서학자가 한 두명 나서서(한기총이 등떠밀어서라도) 도올의 공개토론에 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기독교가 얼마나 황당한 종교단체이며 그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저질스런 신학적 소양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좀 까발겨졌으면 좋겠다.

동시에 도올도 좀 더 겸허하고 겸손하고 자신의 처지와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철학적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비록 그가 전공한 동양철학자는 아니지만 같은 철학자로서 "너 자신을 알라" 는 유명한 말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