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와 과학과의 대화의 필요성(06/8/29)

맛있는돌김 2010. 2. 12. 22:32

종교와 과학의 대화의 필요성을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학이 그 첨단을 걷는 오늘날 나는 더욱 더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왜냐? 지나간 역사가 그것을 웅변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과학, 특히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를 보면 최초의 관계는 종교가 과학의 내용을 그대로 전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또는 설화) 잘 보여주고 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기원전 약 5세기경에 기록된 것이다(창세기의 기록연대가 그렇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온 후에 기록된 것으로 특히 창조기사는 바벨론 창세기와 가나안의 우가릿 문서의 영향을 받아서 기록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 창조기사의 기록관 관련한 잡다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그 내용 자체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바벨론(지금의 이라크)의 위대한 문화가 제공하는 창조론을 이스라엘 신학자들이 신학화해서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당대 최고의 과학적 지식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과학과 종교와의 관계는 그 종교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과학적 지식을 수용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그러나 종교적 교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자연과학은 급격한 발전을 하면서 괴리를 보이기 시작, 갈등관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갈등관계는 종교적 권력이 과학적 권력보다 클 때에는 과학을 억압하고 과학적 진리를 종교적 진리 아래에 두는 우를 범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이 힘을 얻고 종교가 그 절대적 힘을 잃으면서 역전이 된다.

지금은 종교가 과학의 힘에 압도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과학적 지식이 엄청난 부를 안겨주는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학은 그 자체가 권력이요 우상임이 자명해졌다. 그것은 황우석 사건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다.

하여간 종교와 과학이 서로 충돌하면서 대화를 거부하고 적대적 관계만 유지한 결과 종교는 과학이 온갖 더러운 부산물을 쏟아내어 놓는 동안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고, 과학은 종교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황당한 주장까지 하는 것을 나몰라라 하고 방관만 해왔다.

그 결과는 모두 민중들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돌아와야 했다.

자연과학이 윤리 중립적이란 말은 이제 씨도 먹히지 않는다. 자연과학적 발전의 대표격이라 해도 괜찮을 핵물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핵물리학이란 자연과학은 인류를 멸종의 길로 들어갈 길을 깨끗하게 포장해 놓았다.

이런 거대한 과학적 문제 외에도 과학과 그 과학을 토대로 한 기술은 각종 공해와 산업재해를 우리 인류에게 안겨줬으며 그 결과물은 가장 가난하고 힘이 없는 계층이 가장 큰 부담을 져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다시 황우석 사건을 예로 들자면 윤리의식이 결여된 과학과 과학자는 얼마나 큰 해악을 사회에 끼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과학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하는 종교로부터 윤리적 검증을 받아야 하고 종교는 과학자들이 연구해 낸 연구결과를 존중하고 그 연구결과에 어긋나는 교리나 종교적 가르침은 신속히 수정하여 그로 인해서 그 종교를 믿는 신도들, 특히 힘이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신도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최소화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논란거리인 생명공학, 특히 bioengineering분야를 보자.

윤리적 문제를 가장 큰 목소리로 내고 있는 곳이 기독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내가 생각해도 저건 넌센스인데 싶은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진행하다가 나중에 원자탄보다 더 무섭고 지독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를 키우는 것보다는 몇 백 배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명공학이 잘못되었을 때 가져올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그 문제가 엄청난 재정적 경제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서 세계적 거대자본들이 결탁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염려스러운 것이다.

여기 보면 목사들이 돈을 밝힌다고 비난을 많이 하는데 물론 사실인 측면도 있고 그래서 그 비난이 타당한 면도 있지만 사실은 목사들만 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의 탈을 쓴 존재들은 돈을 밝힌다. 과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황우석이 이 점을 얼마나 극명하게 알려줬던가!

엄청난 돈이 걸려있고 이권이 있는 문제라서 과학자들 역시 엄청난 과오를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과학과 종교의 대화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또한 종교와 신학자들도 과학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학적 결과와 사실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서 그런 과학적 지식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종교인이나 성직자나 신학자가 있다면 그런 자들을 도태시키고 제제를 가해서 신자들이 그런 자들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교리와 종교의 우주론이 과학적 사실과 충돌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조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할 것이다.

갈릴레오가 죽은지 400년이나 지나서야 교회도 잘못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물론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말이다.

현대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가 서로 상호적인 관계성 속에서 얽혀있는 사회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할 것인데 이런 상호관련성 속에서 과학만능주의나 종교적 제국주의 모두 심각한 문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인류에게 참된 가치를 발하는 과학과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세상을 향해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기 위해서 현재 종교들의 개혁과 거듭남은 필수적인 요구사항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