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일기

입덧을 시작하면서 -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

맛있는돌김 2010. 2. 13. 08:42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입덧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그 말은 바로 이 때의 나와 우리 아내를 위해서 만든 말 같았다. 무너져 내리는 하늘 한 가운데에서 구멍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사과, 으흐흐흐 사과

나와 아내는 둘 다 사과를 별로 좋아한다. 없으면 생각도 안 나고 누가 예쁘게 깎아서 대령해도 먹을지 말지 망설이는 과일이 사과다. 그래서 내가 사다 바친 음식 리스트에서 제일 마지막에 있던 게 사과였다.

온갖 요리, 과일, 야채를 다 시도한 다음에 이제 사과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 이건 평소에도 엄청 싫어하던 먹거리이니 이런 먹을 것에 대한 혐오증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더구나 먹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그것밖에는 살 것이 없어서 샀다.

별로 가능성이 없어서 많이도 아니고 시퍼런 거, 맛도 없어 보이는 걸 두어 개 샀다. 그리고는 집에 가져가서 깎아서는 아내 앞에 대령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먹는 게 아닌가! 세상에 우리 아내가 사과를 다 먹다니! 그러나 그 다음은 더 기막힌 순간이었다. 눈물겨운 감격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사과 한 쪽을 다 먹도록 화장실을 향해 눈길도 주지 않는 게 아닌가! 감격시대가 따로 없었다.

휴전선이 무너져도 이렇게 기쁠까 싶었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너무 기뻐서 아내를 껴안고 등을 마구 두들겨 주었다. 눈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리고는 곧장 슈퍼를 향해 차를 몰고 달렸다. 돌아오는 차에는 사과란 사과는 종류대로 한 봉지씩 실려 있었다.


기쁨도 잠시...

그런데 이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과로 연명한 지 한달 반 가량이 지났을까, 아내가 사과를 입에 넣고 한 입 씹더니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부터 사과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시 나의 고달픈 식당 순례가 시작되었다. 아내가 어쩌면 냉면은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면 전화로 냉면을 주문하고는 반시간을 달려가서 사오고 떡이 먹고싶다면 떡집으로 달려가고 밤 12시건 새벽 4시건 살 수만 있는 것이면 사러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한 입도 제대로 씹기 전에 화장실 행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지.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따르는 법이라고 옛 어른들은 경험으로 배워 알았나 보다. 아마도 나처럼, 아니 우리 아내처럼 입덧을 겪은 여인과 그의 남편이 호사다마란 말을 지었을 게다.

아니, 어쩌면 그 맛없는 사과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예고도 경고도 징조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싫어하게 될 수 있는 건가? 내 속은 정말로 울고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