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기독교의 신 개념의 변천사(06/8/30)
맛있는돌김
2010. 2. 12. 22:34
기독교의 신 개념은 절대불변인가? 안티를 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기독교의 신 개념은 인격신의 개념에서 시작해서 한 치의 발전이나 변화도 없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것으로 단정짓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먼저 유태교의 야웨 하느님에 대한 개념도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처음에는 유태인들을 보호하고 유태인들을 승리하게 하는 유태인의 민족종교의 신이었지만 그러나 기원전 7-8세기를 지나면서 그 유태인의 신은 유태인이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가차없이 유태인도 처벌하는 신으로서 나타난다. 즉, 민족신의 굴레를 벗어나서 다민족, 범세계적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직접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말도 하고 계시도 내리고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점점 정교한 신으로, 좀더 형이상학적 신으로 변모해 간다. 이런 신이 기독교가 시작되어 희랍 철학과 결합하면서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신으로 바뀌게 된다. 신은 부동의 동자요(이것은 동양철학의 도 개념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만물의 근원이며 일자로서 인식된다. 그리고 4세기에 들어와서는 희랍 철학의 신의 개념과 로마 문명권의 법률 개념이 결합하면서 삼위일체 신론이 형성된다. 우리 동양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삼위일체 신론이란 것이 참으로 황당한 것으로 들리겠지만 희랍의 문명권에 속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납득이 되는 그런 논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의 신론은 5세기 칼케돈 회의에서 완성을 보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입김이 신학적 종교적 입김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 건 사실이다. 로마 황제의 제국 운영의 필요성에서 삼위일체 신론이 어떤 방향으로건 빨리 확정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황제가 밀어붙인 회의에서 이견을 가진 파들이 적당히 서로 한 발씩 물러서서 양보를 함으로써 신론이 확정된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의 신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왔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개념이 규정되어져 왔다. 우리나라의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들이나 이 사실을 모르고 안 받아들이지 서구 기독교는 이 정도는 대충 다 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 개념도 안티 님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계속 발전해 왔던 것이다. 최근에 와서 기독교의 신 개념은 어느 정도로 달라지고 있을까? 과정신학에서는 신이란 우주를 다스리고 우주를 이끌어 가는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미시세계의 움직임은 결코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고 확률 범위 내에서 확률적으로만 말할 수 있다고 하듯이 하느님조차도 우주의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철학에 근거한 과정신학도 서구의 오랜 전통인 인격적 신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해서 신의 결과적 본성이라는 용어로 인격적 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지만 과거의 기독교의 신론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신은 우리 존재의 궁극적 관심이고 깊이의 차원이지 저 하늘에 앉아 있으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벌주고 상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틸리히만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20세기 초의 신학자이다. 오늘날 대다수 신학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자들과 그 교인들을 제외하면 중세기 기독교가 말하는 신,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믿는 그런 신을 믿는 사람은 거의 단 한 명도 없다. 유럽의 경우에는 심지어 가톨릭 사제들과 개신교 목사들까지 그런 하느님 안 믿는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그 비율이 얼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작업가설적 하느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의 수가 절반을 넘어선 것을 분명한 것 같다. 인간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저주를 주기도 하고, 지옥을 만들어놓고 자기 맘에 안 든 인간은 지옥에 던져넣고 맘에 들면 천당에 보내주는 그런 하느님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만 가장 열렬히 환영을 받고 있지 않을까? 유럽의 절대다수의 기독교인 및 신학자들과 미국의 상다수의(미국이 근본주의 신학의 총본산이다보니 미국은 좀 그렇다) 교인들과 신학자들은 안티 분들이 죽여야 한다고, 없다고 주장하는 그런 신을 이미 오래 전에 없애버렸다. 그런 신을 믿지 않아도 여전히 기독교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 기독교가 교인 수가 줄어들었다고 기독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비록 어느 특정 교회에 등록하고서 기독교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아도 여전히 그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 물으면 하나같이 신의 존재는 믿는다고 대답한다. 저 아래 어느 분이 강원용 목사 이야기하면서 독일은 종교세를 거둔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종교세를 거두기는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본인이 원하면 거두고 원하지 않으면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비기독교인이나 반기독교인이 기독교를 위해서 세금 낼 일 없다. 당시의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내야하는가부다 하고 세금을 냈는지 모르지만 여튼 본인이 싫다고 하면 아무도 강제로 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거의 대다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종교세를 내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바쁘고 재미없어서 교회는 안 나가도 최고한 헌금은 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명맥은 유지하겠다는 사고일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그 종교세를 가지고 성직자들에게 월급도 주지만 참 좋은 일도 많이 한다. 국민들의 교단별 분포를 근거로 각 교단별로 종교세 수입금을 나눠주면 그걸로 각 교단은 좋은 일 정말 많이 한다. 목사나 신부들도 신도수 증가와 아무 상관없이 월급을 받으니까 편법이나 이상한 교리를 읊조릴 필요도 없고 그래서 아주 성실하고 정확하고 깨끗한 목회를 한다. 이제 앞으로 기독교의 신 개념은 어떻게 변해갈까? 아마도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 대원리, 이런 것이 신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동양철학의 도 개념과 서구의 기독교의 신 개념이 만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다. 유태인의 신 개념이 희랍철학의 신 개념과 만나서 서구를 휩쓰는 신 개념의 창출에 성공했듯이 이제 동양 철학과 서구의 기독교의 신 개념이 만나서 새로운 개념 창출에 성공하면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 가능하게 된다. 사실, 기독교의 역사는 끊임없는 변화와 갱신의 역사이다. 예수의 출현이 바로 시대에 뒤떨어진 유태교의 갱신을 가져왔고 그 예수의 정신으로 시작한 기독교가 다시 인간들의 타락과 지적 발달을 쫓아가지 못해서 심각한 폐단을 가져오자 종교개혁으로 다시 갱신을 이루었던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이 심각한 오류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종교개혁은 가진 자, 권력자 중심의 개혁이어서 정말 민중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밑바닥부터 변화시킬 힘을 가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해서 오늘날까지 종교개혁은 지속되어와야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으로 인해서 더 요상해지고 더 타락하고 더 문제가 많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와서 기독교 스스로 자살골을 먹이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기독교가 개혁할 수 있는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신 개념에 있어서 서양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도의 개념을 우리는 확실히 파악하고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을 앞장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신학적 방향과 황당한 목회자들의 대량 출현 내지 그들의 기득권으로 인해서 오히려 세계 기독교의 암적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기독교가 안티 운동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더 고마울 데가 없겠다. 물론 안티들의 생각은 이런 기독교를 이 대한민국 땅에서 깨끗이 쓸어내 버려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그건 잘 안 될 것 같고 그게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좀 더 나아지기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